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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한없이 보장되어 있는 현대미술(contemporary art)이 다비드나 앵그르의 신고전주의 세계보다 그 표현의 영역이 오히려 위축되어 가는 듯하다. 현대미술에서 성(聖)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다양하고 자유분방한 예술 사조로 이제 쉽게 지각하기는 어려워졌다. 그래서 하나님(神)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아직도 우리가 잘 아는 성경의 텍스트나 후광과 같은 상징에서 그것의 이해를 한정시키곤 한다.

이연미의 작품은 내용적으로 백인 예수와 십자가가 노골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핵심 메시지는 심오한 기독교다. 서양 성화(聖畵)의 객관적 답습도 아니고 영적(靈的) 환희가 스스로 넘치는 주관적 도취도 아니다. ‘정원(庭園)’이라는 장치를 통해 자신의 신앙심에다 상상을 덧붙여 참신한 기독교 미술을 만들어 냈다.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에 존재했던 에덴동산의 완벽함을 갈망하고 그리워하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새롭게 창조한 것이다. 그런데 그의 비밀스러운 공간에는 알 수 없는 표정의 사람, 독특한 모양의 동물과 식물 등이 등장하는데, 이처럼 실존하지 않는 강력한 요소들은 ‘파라다이스’라는 통념이 주는 빤한 안락함보다 낯선 상상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이연미의 작품은 형식적으로 명암이 극도로 절제된 편평한 화면, 파스텔 톤의 선명한 색, 이미지를 딴 테두리 등의 특징이 있다. 이 기법들은 일본의 우키요예(浮世畵)와 애니메이션 작품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특히 유년시절부터 즐겨 본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에 나오는 숲에 대한 표현과 느낌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겉으로 보이는 시각 효과는 엇비슷한데, 미야자키 작품의 철학보다 색감을 사용하는 기법만 차용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이연미의 작품과 제목을 한눈에 보고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본질을 금방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아 정확한 이해 과정은 시간이 다소 걸린다. 하지만 선과 악이 혼재하고 있는 생소한 느낌의 정원을 형형색색의 상상력으로 그려낸 작품 그 자체는 관객에게 어필하기 충분하다. 좋고 싫고 떠나서 금세 눈을 떼기 쉽지 않은 것이다. 이는 내용과 형식이 뚜렷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결과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내용적으로는 이데올로기 미술과 마찬가지로 종교 미술은 명확한 대의(大義)가 있고, 형식적으로는 복제 미술에서 대중적으로 검증된 색감을 사용했다. 물론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을 대전제로 시작하면서다. 어찌 보면 이연미는 다른 작가에 비해 비교적 이른 나이에 자기 작업에 대한 고민을 일단 끝낸 셈이다. 그렇다면 그는 하나님(神)이 부여한 재능을 충실히 완수한 것일까. 이제 앞으로 그저 열심히만 하면 되는 것일까.

일본과 달리 한국에는 기독교 신자가 많이 있다. 예술가 중에도 크리스천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은 자신의 개성을 터트리고 만끽하다가도 표현 방향과 수위에 있어서 때때로 고민하고 조심스러워한다. 자신의 작품을 하나님(神)의 객관적 잣대로 검증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작가들은 이런 고민을 접어 두고 개인 작업에 몰두하던가, 아니면 고민은 고민대로 해서 표출하지만 외부적으로 공개하기를 꺼려한다. 왜냐하면 개인 브랜드 띄우기 급한 젊은 아티스트에게는 탈아(脫我)적인 종교 미술이란 촌스럽고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기 때문이다. 당장 예술가로서 남는 장사가 아닌 셈이다. 결국 속사정을 알 수 없지만, 갈수록 현대미술(contemporary art)에서 젊은 작가들이 커밍아웃하는 기독교 미술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하나님(神)이 부여한 재능과 아티스트의 개성은 과연 완벽한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성경에 의하면 사람은 하나님(神)의 형상에 따라 빚어졌으니, 왕성한 창작력을 부여받은 오늘날의 크리스천 아티스트는 과연 어떠한 창작 활동을 해야 할까? 이들이 작품을 만들어 낼 때마다 어디까지가 자신의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하나님(神)의 영역일까? 특히 개성을 강하게 드러낼수록 하나님(神)을 가릴 수 있다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자신만의 고유 속성을 보여주지 않으면 창작자의 존재 이유조차 없어지기도 한다. 과연 지나친 상상력은 하나님(神)이 싫어하는 또 다른 우상을 만들어 내는 것일까. 하나님(神)의 존재를 의식하는 작가라면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고민이 아닐 것이다.

오늘날 현대미술(contemporary art)은 자극과 고안의 경연장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 세련된 감각과 독특한 아이디어에 놀란 적은 많지만, 갈수록 영혼을 건드리기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전시장에서 탄성과 경악의 소리는 날지언정 더 이상 가슴이 매어지는 감동과 눈물을 기대하기 힘들다. 이연미가 종교적 테마로 작업의 출사표를 던졌다면 작품의 진정성은 중간 이상은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다른 현대미술 작품과 마찬가지로 그저 현란한 감각을 폼 내는 장기자랑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감동’을 선사해야 진정한 목적을 이룰 수 있다.

과연 이연미는 미켈란젤로와 렘브란트처럼 영혼의 감동을 오래 오래 남길 수 있는 예술가가 될 수 있을까? 일찍이 위대한 예술은 그 감동을 통해 천국을 미리 조금 맛보게 하지 않았던가. 제 아무리 수많은 사람을 눈길을 끌 수 있어도 영혼을 감동시키는 작품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하긴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예술가라면 죽기 전에 바라는 꿈이 아니던가. 부끄럼 없이 자신의 예술 세계의 정체를 고해성사한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그의 작품 속에서 사람의 놀라운 재능을 넘어선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해도 좋을까.

강철/시각이미지전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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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sgh 파스텔톤의 색감이 혐오스러운 그림이라도 커버를 하네요. 색감은 예쁩니다. 2010.10.12 14: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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